[2022-07-12] [칼럼] 한상백의 돌출입과 인생 <138회> :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 2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 2>


가령 집 정리를 하다가 보니, 옛날에 그려놓은 유화가 몇 점 굴러다닌다. 생각해보니 ‘이걸로 미술전시회를 열면 되겠군’하고 결심한다면, 이게 바로 떡 본 김에 제사 지내는 격이다.

그런데, 반대의 경우가 있다.
미술전시회를 열어 줄 테니, 그림을 그리라고 한다면?
떡은커녕, 쌀도 없는데 제삿날부터 잡아놓았다면?

한 지인이 내게, 그림을 같이 그려보지 않겠냐고 해서 몇몇 분들이 그림을 그리고 있는 화실로 향했다. 작가님들이 이젤 위의 캔버스에 작업을 하고 계셨다. 알고 보니 말이 아마추어지, 이미 그 분들의 그림을 구매해서 소장하고 전시한 곳이 꽤 있으니, 세미프로 혹은 프로 작가에 다름 아니었다.

일단 갔으니, 필자도 그 화실에서 그림 그리는 흉내를 내고 있는데, 어느 날 갑자기 화실 그룹 전시회 날짜가 잡혔다는 ‘통보’를 받았다.

작품 몇 점을 한 달 안에 만들어 내야 했다.
그렇다. 당일치기, 아니 당월치기다.

이미, 여러 작품을 그려 놓으신 선배님들은 유유자적이었다. 어떤 작품을 출품할지만 고민하면 되었다. 같은 시기에 난 백지 상태의 하얀 캔버스를 주문했다. 제사 날짜는 잡혔는데, 떡은 고사하고 이제 모를 심은 셈이다.

필자는 학창시절을 줄곧 당일치기로 살아왔다. 물론, 평소에 놀기만 한 것은 아니지만, 시험을 앞두고 밤을 꼴딱 새는 것은 기본에 가까웠다. 아직 다 못 외우고 못 푼 게 있는데 잠이 오나? 예습, 복습 따위는 한 적이 없다. 무조건 시험 전날이 중요하다. 이틀 전에 외운 것보다 하루 전, 몇 시간 전, 바로 전에  외운 것의 기억이 선명한 건 당연하다.

재수를 한 후 S대 의대에 선(先)지원하고 S대 관악 캠퍼스에 가서 두 번째 대입시험을 치렀는데, 쉬는 시간에 다음 시험 과목의 책장을 번개처럼 넘기면서 별표 쳐놓은 것들을 눈에 ‘바르고’ 있다가, 못 볼 것을 보고 말았다.

저만치 옆자리의 어느 수험생이 정좌한 채 눈을 감고 무릎 위에 손을 둥그렇게 모으고 명상을 하는 모습을 본 것이다. 순간 기가 빨리는 느낌과 함께, 버둥대고 있는 내가 초라하게 느껴졌다. 그 수험생도 합격했고 나도 합격해서, 나중에 그 친구에게 물었다. 무슨 자신감으로 쉬는 시간에 눈감고 그러고 있었냐고 했더니, 쉬는 시간에 책을 더 봐서 얼마나 더 맞추겠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난 다시 그 때로 돌아가도 한 글자라도 더 보다가 시험에 들어갈 것이다.

당일치기는 평소의 게으름의 댓가이긴 하지만, 어쨌든 최후까지 놓지 않는 책임감이다.

 *  *  *

학창시절 미술선생님들이 내게 미대 가라고 했던 것이 진심이셨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전국단위 대회로는 1981년 중 1때, 문화공보부 후원 제 16회 전국청소년 미술대회 우수상(한국 청소년미술협회 이사장), 그리고 1982년 제 18회 국제전 선발 및 전국청소년 미술대회 최고상을 기점으로, 예원학교장, 예술고등학교장이 수여하는 전국 미술대회의 특선, 가작 몇 점을 더 그리고 나서 붓과 이별했다.
 
S대 의대에 들어간 다음, 당연히 의대 미술반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군기가 세다는 소문에 더 자유로운 분위기의 다른 동아리에 들어갔다. 그러나 여전히 그림이 그리고 싶어서, 싱글 의사로 혼자 살 때 방 하나를 화실로 꾸며 그림을 그렸다. 그 때 나름 창조하는 고통의 느낌은 내 기억 속에 린시드 오일, 테레핀 오일의 향과 뒤섞여 있다.


돌출입수술, 광대뼈수술, 사각턱수술, 턱끝수술이 그림 작업과 가장 다른 점은, 수술은 단 한 케이스도 망치거나, 미루거나, 덧칠하거나, 미완성 작품으로 끝낼 수 없다는 점이다. 수술에서는 자유 대신 절제, 지식, 최고 수준의 주의(注意)가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그림을 그리는 작업은 얼마나 자유로운가?
물론 그림에도 절제의 미학이 있다. 또한, 자유롭게 그린다는 것은 무엇이든 마음껏 그릴 수 있다는 이야기인 동시에, 무엇을 어떻게 그려야할지 전혀 감을 잡을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백색 캔버스에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전시회 도록에 쓴 작가노트에 이렇게 적었다.

“의사로서 30년을 캔버스가 아닌 사람 얼굴 위에 그려내고 조각하는 작업을 하며 살아왔습니다. 성형외과 의사가 얼굴에 만든 작품은 숨길 수가 없으며, 수천 명의 환자의 얼굴은 곧 걸어 다니는 전시회가 됩니다.
 
수술은 늘 즐겁습니다. 그러나, 얼굴 수술이라는 작업은 환자의 안전을 전제로, 단 시간 내에, 해부학적인 허용 범위 안에서 한 치의 실수를 허락하지 않으며, 되돌릴 수도 덧칠할 수도 없습니다. 이 작업은 차가운 의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상상력을 더 할 수 없는 절대 미학과 황금 비율을 근간으로 합니다. 그 결과는 누가 봐도 예쁘고 자연스럽고 아름다워야만 합니다. 성형수술을 하면 인조 미인이 만들어지는 것으로 오인되는 것은 확증편향입니다. 아름다움은 수술이든, 회화든, 조각이든 모든 예술의 공동의 목표입니다.
 
오귀스트 르누아르는 ‘나에게 그림이란 유쾌하고 즐겁고 아름다운 것이다. 그렇다, 무조건 아름다워야 한다. 세상에는 불쾌한 것들이 이미 많은데 그런 것을 굳이 그려낼 필요가 없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캔버스에 더 자유롭고 따뜻하고 유쾌한 아름다움을 담아내고 싶었습니다.
아직 서툴고 부족하지만, 짧은 시간이나마 메스 대신 붓을 잡을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  *  *

방금 특전사 출신 남자 환자의 돌출입, 광대뼈, 사각턱수술을 끝내고 나와, 다시 키보드 앞에 앉았다.
얼굴뼈 집도의로 살아온 적지 않은 시간 때문이겠지만, 역시 붓보다 메스를 잡을 때가 더 안락한 느낌이다. 망망대해로 나가는 모험이 아니라, 이미 잘 알고 있는 꽃길을 산책하는 것 같은... 일이 즐거운 것은 행복이다.

행복에도 여러 색깔이 있을 것이다. 내가 수술한 환자가 결혼한다는 소식을 또 전해 들었다. 내가 짝을 찾아준 것은 아니지만, 여하튼 내가 수술하고 나서 짝을 찾아 결혼한 선남선녀들은 그 숫자를 다 세기 어려울 것이다. 행복했으면 좋겠다. 내 손으로 만들어낸 작품들이 사랑하고 사랑받고 사는 것은 얼마나 기쁜 일인가? 잘생기고 예쁜 사람들이 ‘얼굴값’한다던 시대는 지났다.

떡도 준비 안 된 제사는 어떻게 되었을까?
다행히도, 며칠 밤을 새 가며 그린 내 그림 두 점이 지금 인사동 어느 갤러리에 걸려 있다.

그보다 훨씬 더 다행인 것은, 필자가 ‘아직 서툴고 부족하지만 붓을’ 잡을지언정, ‘서툴고 부족한 상태로 메스를’ 잡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사람 얼굴에 하는 돌출입수술, 얼굴뼈수술이라면 부족함도 넘침도 없는 완벽한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을 때 칼을 들어야 한다고 확신한다.

서툰 칼, 서툰 수술은 미필적 고의를 품은 흉기가 될 수 있다.
전시회의 그림은 ‘별로네’ 하면 그만이지만, 의사를 믿고 맡긴 환자의 얼굴은 그래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한상백


현 서울제일 성형외과 원장

서울대 의학박사, 성형외과전문의

서울대 의대 우등 졸업

서울대 의대 대학원 졸업 및 석, 박사학위 취득

서울대병원 수련의, 전공의, 전임의

서울대학교병원 우수전공의 표창(1996년)

전 서울대 의대초빙교수

저서 돌출입수술 교정 바로알기(명문출판사,2006)

대한 성형외과 학회 정회원

대한 성형외과학회지 논문게재 및 학술대회 발표, 강연

2018,2019,2022년 한국 및 타이완 성형외과 국제학술대회에서 돌출입수술 초청강연
2022년 SCI급 미국성형외과학회 공식학술지(영향력지수 IF=5.169)에 돌출입논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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