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7-12] [칼럼] 한상백의 돌출입과 인생 <137회> : 절약

<절약>



강남 모처에 자주 가는 중식당이 있다. 순우리말인 밥집, 혹은 중국집이라고 하면 왠지 격이 떨어지고, 중식당이나 차이니즈 레스토랑이라고 하면 더 고급인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문화적으로 좀 안타까운 일이지만, 논외로 하겠다.

그 중국집에 자주 가는 이유는 탕수육이 맛있어서다. 짜장면과 탕수육은 어린 시절 혹은 군대에서 휴가 나왔을 때 최애 음식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달짝지근한 소스를 부은 고기튀김이라고 해서 다 맛있지가 않다. 맛은 본능적으로 느끼는 것이지만, 좀 더 생각해보면 고기의 맛과 질, 튀김옷의 경도와 식감, 소스의 당도, 산도, 묽기에 따라서 맛이 있고 없고가 결정된다.

이 식당의 탕수육에는 별 다섯 개를 아낌없이 줄 수 있는데, 이 집의 인심과 편의성, 청결도에는 별점을 후하게 주기가 어렵다.

한번은, 이 집에 옛날짜장이 당겨서 두 셋이서 먹으러 갔는데, 같이 시킨 군만두가 너무 맛있어서, 군만두를 중간에 한 판 더 주문하려고 했더니, 딱 잘라서 안 된단다. 재료가 없다는 건 거짓말이었다. (더 비싼) 탕수육도 시키지 않고 (더 싼) 짜장면과 군만두만 먹는 것도 눈엣 가시인데, 게다가 기름에 튀겨서 나오는 군만두를 중간에 추가로 시키면 그걸 만들고 또 먹고 하는데 테이블을 차지한 채 시간이 허비되니 싫은 것이다. 그만 먹고 나가라는 거다. (탕수육을 시킬지도 모를) 새 손님을 받고 싶은 것이다.

이 식당 안에 있는 화장실에서는 불쾌한 냄새가 난다. 그럴수록 손이라도 뽀드득 씻고 나오고 싶은데 손을 비누로 열심히 씻고 나면 페이퍼타올이 없다. 수건이 한 장 걸려있는데 근처에만 코를 대도 냄새가 난다. 하루 한 장의 수건으로 버티는 모양이다.

대충 손의 물기를 털고 나오면 휴지가 필요한 게 당연하다. 그런데 손바닥보다 작은 사각 모양의 테이블 냅킨은 각 테이블마다 정확히 3장씩 꽂혀있다. 그걸 다 쓰고 휴지 좀 더 달라고 하면, 약간 못마땅한 표정으로 다시 정확히 3장을 가지고 온다.

나이 지긋한 이 집 주인의 경영철학은 ‘절약’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각박한 시절을 견뎌내 온 세월의 조건반사일 것이다. 예를 들어 페이퍼타올을 화장실에 넉넉히 구비해놓고 ‘한 장이면 충분합니다’라고 써놓는 정도의 절약 정신은 꽤 본받을 만 하다고 생각하지만, 2022년의 어느 식당 공용 화장실에 젖은 수건 한 장을 세면대 옆에 걸어놓은 것은 좀 시대착오적이다. 사장, 주방장과 직원들도 이 화장실을 쓰고, 여기서 손 씻고, 이 수건을 사용할 것이다.

네모난 냅킨을 단 세 장씩만 주는 것도 너무하다. 넷이서 먹어도 세 장만 준다. 네 명다 입을 닦으려면 반드시 모자라는 숫자다.

그 식당은 아마 그 누구의 말도 듣지 않고, 수십 년을 장사해온 그대로 돌아가겠지만, 내가 만약 그 중식당의 경영 컨설턴트라면, 군만두만 먹는 사람도 최고로 대접받는 손님으로 느끼게 하고, 화장실 공사를 해서 아늑하고 깨끗하게 하며, 페이퍼타올과 가글링 용액, 고급 핸드워시를 비치하고, 냅킨을 테이블마다 충분히 주라고 권하고 싶다.

그 식당이 수십 년 동안 페이퍼타올 대신 수건 한 장으로 하루를 버티고, 냅킨을 최대한 아껴서 절약한 돈은 과연 얼마나 될까? 한달에 오만원, 1년에 60만원을 아꼈다고 치면, 약 30년 동안 1800만원을 아꼈을 테니 적지 않은 금액이다.

그러나, 더 후한 인심을 베풀고, 더 쾌적한 화장실과 마음껏 편리하게 쓸 양의 냅킨을 제공했을 때 고객들이 느끼는 만족도와 재방문율을 추정하면, 분명히 1800만원은 상회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실제로 탕수육이 먹고 싶어 그 집에 가자고 하면, 세 번 중에 두 번은 가족들이 반대한다. 화장실이 더럽고 냄새나서 가기 싫단다. (특히 코로나 유행 이후로는 밥 먹기 전에 꼭 화장실에서 손을 씻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으니, 화장실을 안가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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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도 사실 마음만 먹으면 절약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첫째, 병실에서.

어느 병원의 입원 준비물에 각티슈(크리넥스)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다.

돌출입수술이나 윤곽수술은 필연적으로 수술 후 휴지가 좀 필요하다.
사랑니 한 개만 뺀다고 쳐도 하루 이틀 피가 스며 나오는데, 전신마취 하에서 치아를 4개 발치하고 절골 수술을 했으니 그것만으로도 일시적으로 미량의 피가 침에 섞여서 가끔 나올 수 있고, 콧물이든 눈물이든 환자 곁에 부드러운 티슈는 필수다.

환자에게 휴지를 아껴 쓰라는 말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각티슈를 쓰다가 가져가겠다는 환자들도 가끔 있다. 흔쾌히 그러시라고 한다.

꼭 환자 입장이 아니어도, 필자의 지론 중 하나가, 주위에 각티슈가 손에 닿는 곳에 많이 있으면 풍요롭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운전할 때도 그렇다. 재채기를 했거나 코가 막혔을 때 손에 잡히는 곳에 휴지가 없다면 여간 불편하지가 않다. 세상에 휴지만큼 값싸게 나를 풍요롭게 만드는 물건도 찾기 어렵다. 그러니, 휴지는 안 아끼고 살고 싶다. 물론 나무의 펄프로 휴지를 만드니, 휴지를 낭비하는 것은 환경론적 관점에서 바람직하지 않겠지만, 무언가를 깨끗이 하기 위해 쓰는 휴지에까지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며 나무에 참회하듯이 살 수는 없지 않은가?

둘째, 수술장에서.


우리 병원 수술장 간호사들은 절약에 대한 압력을 받지 않는다.

예를 들어 입안 절개를 봉합하는 실이 두 개면 충분한데 간호사가 실수로 세 개를  꺼냈다고 해서 원장이 뭐라고 하지 않는다. 지독한 원장이라면, 화를 내는 건 기본이고, 간호사 월급에서 깐다거나, 시말서를 쓰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일은 상상도 해본 적이 없다.

봉합사가 두 배로 많으면, 더 여유 있게 실을 쓰면서 봉합하면 된다. 수술을 하다가 실이 약간 모자를 것 같아도, 궁상맞게 아껴 쓰느니 그냥 하나 더 꺼내라고 한다. 쓰던 실을 간호사가 떨어뜨려 못쓰게 되어도 결국 하나 더 꺼내게 된다. 너무 아무 잔소리를 안했더니, 실을 바닥에 떨어뜨려도 원장에게 죄송하단 말조차 안하는 건 좀 섭섭하지만, 그냥 그러련  한다. ‘새 실로 꿰매면 더 기분 좋지 뭐’ 하고 생각해 버리는 편이 낫다. 물 부족 국가라는 미명하에 환자의 수술부위를 세척하는 생리식염수를 아끼거나, 거즈를 아끼려고 애 쓰지도 않는다.

결과적으로 환자의 수술에 필요한 것들을 아낌없이 풍족하게 쓰는 게 더 좋은 일이다. 그런 물품 아껴서 절약한 비용보다, 원장의 정신건강, 아름다운 결과, 환자의 만족도가 더 중요하다.

셋째, 시간

세상에는 시간을 절약할 수 있는 편법들이 존재한다. 가령 골목을 통해서 가는 지름길이라든지, 나사를 네 개 박도록 되어있는 브라켓에 나사를 두 개만 박든지 하는 것들이다.

그러나 필자는, 수술을 할 때 시간 절약을 위해서 꼭 필요한 과정을 생략해서는 안 된다고 믿고 있다.

예를 들어, (표현이 너무 생생해서 좀 무서울 수도 있지만) 뼈를 절골하는 수술은 필연적으로 뼈가루가 생긴다. 목공소에서 나무를 자르면 옆에 톱밥이 쌓이는 이치다. 필자는 오랜 경험상, 이 뼈가루를 잘 제거하는 것이 감염방지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빨리 봉합을 끝내고 저녁 약속에 가겠다며 생리식염수로 세척하는 과정을 대충 생략해버리는 우를 범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나무늘보 한 걸음 떼듯 수술을 해야 잘 된다는 뜻은 아니다. 그렇게 수술하는 것을 가리켜 외과의(surgeon)들 사이에서는 ‘깨작깨작’ 수술한다는 은어를 쓰기도 한다. 집도의가 해부학에 자신이 없고 박리하는 층(plane)에 확신이 없으면 깨작깨작 수술하게 된다.

20여년 전 S대 병원 성형외과 은사님이, 당시 모 펠로우(전임의)에게 수술을 일부 맡기고 교수 휴게실로 나오신지 1시간 쯤 되자 안절부절 하시면서 4년차인 날 찾아, 수술이 너무 느려 답답해서 안 되겠다며 필자를 수술장으로 긴급 투입했던 기억이 난다. 손이 빠르다는 것은 성급하다는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필요하고 또 가능한 구간에서는 적절한 속도를 내고, 신중한 구간에서는 최고수준의 주의를 기울이는 완급조절이 잘되어야 결과적으로 총시간이 짧아진다. 하긴, 세상에 완급조절이 필요 없는 것이 뭐 있겠나. 수술이든, 사랑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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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식당 사장님이 이 글을 볼 리는 없겠지만, 탕수육 값보다 돌출입 수술비가 훨씬 비싸니 휴지를 절약할 필요성도 다르다고 항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필요한 것은 맛뿐만 아니라, 마음이다. 방문한 손님이 맛있는 음식을 먹을 뿐만 아니라 쾌적하고 편리하게 느끼고 간다면, 중식당 사장님은 더 큰 부자가 되어있었을지도 모른다.

하긴, 남의 중식당 걱정할 것이 아니고, 필자의 병원에서 환자가 돌출입, 광대뼈, 사각턱, 턱끝 수술을 받고 하루 입원했다가 퇴원하는 여정 동안, 불편하거나 쾌적하지 못한 부분이 있지 않은지 돌아봐야겠다.

탕수육 맛만 가지고는 그 식당이 완벽하지 않듯이, 환자들이 필요한 것은 원장의 수술 실력과 결과 뿐만은 아닐 것이다. 수술을 앞둔 환자의 두려움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능력이라든지, 아늑하고 포근한 입원실이라든지, 쾌적한 수술실, 직원들의 친절도, 마음이든 물품이든 후하게 베푸는 태도, 수술할 때 환자에게 아끼지 않는 환자 중심의 진료와 같은 것들이 결과적으로 환자의 만족도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청결과는 무관하지만, 병원 로비 천정 도배지가 세월이 가면서 균열이 생겨 찢어졌었다. 천정의 목공 구조물이 날씨와 기온에 따라서 수축과 팽창을 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라고 한다. 어서 보수를 해야지 하면서도 바쁘다는 핑계로 잊고 지내다가, 얼마 전 연휴에 깨끗이 보수를 했다. 실장 상담실과 대기실의 벽지도 밝은 색으로 교체했다. 그동안 우리 병원을 방문했던 환자(또는 고객) 중에, 그 찢어진 천정 도배지를 보고 추레하다고 느낀 분이 있었을지도 몰라 부끄럽다.

사족 같지만, 개원할 때 절약 대신 과소비를 하는 병원도 있다. 인테리어에 큰돈을 들이 붓는 것이다. 공동 개원이면 공동 출자한 자금력으로 더 그렇게 하기도 한다. 병원이 건물 전체를 쓰고, 인테리어도 으리으리하고, 원장도 여러 명이 포진해 있으면, 왠지 원장 실력도 어마어마할 것으로 느껴질 수 있겠다.

하지만, 병원 로비에 샹들리에가 5천만원짜리라거나, 바닥과 벽 전체가 이태리 산 대리석이라거나, 원장이 여러 명이라고 해서 수술이 잘되는 것은 아니다. 솜씨가 좋은 원장만 딱 모여 있기가 확률 상 더 어려울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수술 솜씨는 돈으로 사서 장착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상백


현 서울제일 성형외과 원장

서울대 의학박사, 성형외과전문의

서울대 의대 우등 졸업

서울대 의대 대학원 졸업 및 석, 박사학위 취득

서울대병원 수련의, 전공의, 전임의

서울대학교병원 우수전공의 표창(1996년)

전 서울대 의대초빙교수

저서 돌출입수술 교정 바로알기(명문출판사,2006)

대한 성형외과 학회 정회원

대한 성형외과학회지 논문게재 및 학술대회 발표, 강연

2018,2019 한국 및 타이완 성형외과 국제학술대회에서 돌출입수술 초청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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