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7-12] [칼럼] 한상백의 돌출입과 인생 <135회> : 괴물

영화 <기생충>으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감독상을 받아 오스카 트로피를 들어 올린 봉준호 감독은 <살인의 추억>, <괴물>, <설국열차>, <마더> 등 화려한 필모그래피를 자랑한다. <괴물>은 2006년 천만관객을 동원해서 당시에 한국 영화의 흥행기록을 새로 썼던 영화다. 우리가 늘 보는 한강에서 괴물이 나온다는 설정이 참신했다. <나무위키>에 의하면, 영화 속 이 괴수는 몸길이는 13.7미터, 나이는 7세, 그리고 성별은 암컷이라고 한다. 성별은 대체 어떻게 알았을까?

27세의 여자환자 P가 필자를 찾아왔다. 그 환자를 잊을 수 없는 것은, 20년간 내가 봐 온 환자 중에 무턱의 정도가 단연 1위였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영국의 제 1의 도시가 런던이라는 것은 알지만, 제 2의 도시는 잘 알지 못한다.

사실 무턱은 의학용어가 아니며, 소이증(작은턱끝증) 또는 소하악증이라고 해야 맞다. 자연계에는 무악동물(agnatha)이 있지만, 사람에게서 턱이 정말 없을(무;無) 수는 없다. 그런데, P는 정말로 턱끝이 보이지 않았다. 아랫입술에서 목으로 가는 윤곽선이 턱끝이라고 할 만한 구조가 없는 완연한 1자였다. 눈은 반쯤 감은 것처럼 보이면서 뜨는 힘이 약했고, 몽고주름(내안각췌피)이 강해 눈 사이는 멀어보였으며, 광대뼈도 꽤 많이 돌출되어 있었다.

필자는 워낙 많은 돌출입과 무턱, 혹은 주걱턱 환자를 봐 왔기 때문에, 환자의 입매나 얼굴모양을 인식할 때 사적인 감정보다는 이성적인 판단 즉, 진단을 한다. 그럼에도 P의 무턱은 그 심한 정도가 범상치 않아서, 환자가 30년 가까이 사는 동안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을 지를 지레 짐작케 했고, 그런 안타까움은 이내 사명감이 되었다.

우리 마취과 선생은 내가 환자의 개인사를 조목조목 알고 있는 게 신기하다고 한다. 필자는 환자를 취조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돌출입이나 광대뼈, 사각턱이 돌출된 환자들이 무슨 큰 병에 걸린 것도 아닌데, 병원에서 의사와 상담하는 시간 동안이 암울하거나 엄중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환자가 살아온 것, 공부하는 것, 일하는 것, 가족, 취미 등에 대해 자연스럽게 묻고 답하며 여러 가지를 알게 된다. 그런 정보가 수술하는데 아마 3% 정도는 도움을 주고 있을 것이다. 시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35세 기혼 여성과, 피팅 모델인 35세 비혼 여성의 입매는 목표가 조금 다를 수 있다.

P는 구김살이 없었다. 특이한 외모라면 위축되거나 모나거나 어두운 구석이 있을 것이란 예상은 편견이고 착각에 불과했다. 오히려 그래서 더 궁금하긴 했지만, 돌출입과 심한 무턱이라는 외모의 단점으로 인해 속상했던 일을 꼬치꼬치 캐묻고 싶지는 않았다.

몇 년 전 모 방송사의 신인 가수 발굴 경연 프로그램에서, 모 심사위원이 참가자에게 했던 심사평을 방송을 통해 들으면서 (나만) 분개했던 적이 있다. 참가자는 어렸을 때 부모와 생이별해서 고아원에서 자란 아픈 개인사가 있는 사람이었다. 모 심사위원은 그의 노래를 듣고, “그렇게 아프게 컸는데 왜 감성이 그 정도냐?”면서, “어린 시절의 그 괴로움을 짜내야 한다”는 식의 혹평을 했다. 꼭 그래야 했을까? 노래가 별로인 것이야 심사위원으로 지적할 수 있겠지만, 그 배경 설명은 정말이지 이해할 수 없다. 아픈 과거를 가진 사람에게 2차 가해가 아닐까?

필자가 P에게 그럴 수는 없었다. ‘당신은 특이한 외모로 줄곧 놀림을 받으며 컸을 테니, 마음의 상처가 있는 건 확실할 테고...’라는 그릇된 단정으로 환자를 재단해서는 안 된다. 이내 나의 성급한 연민을 지워냈으나, 사명감은 더 굳건해졌다.

이야기를 할수록, 그녀는 참 매력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육체의 모양이 그 사람의 영혼을 다 가리지는 못한다. 아주 큰 수술이라는 오해를 받는 돌출입수술을 앞두고, 예민해진 환자들은 본디 자기 성격보다 더 의심과 걱정이 많은 불안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건만, P는 그렇지 않았다.


그녀의 긍정 에너지와 나이에 걸맞지 않은 관조적 태도는 필자로 하여금 오히려 존경심이라고 해야 온당할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남보다 아름다운 외모로 사는 것이 더 사회적 이득이 많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특이하거나 매력적이지 않은 외모로 산다는 것은 상대적으로 덜 호의적인 주위의 반응들을 더 자주 경험했다는 것과도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맑은 성품에 흔들림이 없었다는 사실이 더 존경스러웠다. 그래서일까, 그녀를 알아보고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는 영혼의 짝도 있었다. 그 남자친구를 꽤 오래 사귀었다고 한다.

수술 날짜가 되었다.
그동안 수술했던 환자들 중에 무턱이 1위였던 만큼, 돌출입수술과 동시에 이루어진 턱끝수술의 전진양도 역시 1위였다. 광대뼈수술, 쌍꺼풀 수술, 앞트임수술도 같이 시행되었다.
 
수술을 하고 며칠 뒤, 우리 병원 실장에게 연락이 왔다. P양의 어머니가 뭘 좀 보내고 싶다며 필자의 집주소를 알려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조건(?)이 있단다. 냉동고를 여유 있게 미리 비워놓으시라는 당부. 이사 박스만한 것이 도착했다. 집으로 배달된 유기농 냉동식품 한 박스는 지금도 야식으로 애용하고 있다.

수술 후 두 달 째쯤 필자와 마주앉은 P는 행복해했고 여전히 밝았다.
수술 전에 정말 심했던 무턱, 돌출입의 모습과 현재의 모습을 사진으로 비교하고 나서, 어머니가 보내주신 엄청난 양의 냉동식품을 잘 먹고 있다며 이런 저런 대화를 하던 끝에, P가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런 적이 있었어요. 제가 중학생 때, 옆에 지나던 초등학생 세 명이 제 얼굴을 보더니, “괴물이다~!” 소리치며 도망을 갔어요.

울지 않았다고 했다.
그녀는 그렇게 단단해져 갔는지도 모른다. 세찬 물살에 동글동글해지고 반짝반짝해진 조약돌처럼...

한국의 전래동화 <콩쥐, 팥쥐>나, <신데렐라>, <백설공주>와 같은 서구권의 동화에서도 항상 착한 것은 예쁜 것이고, 예쁜 것이 착한 것이었다. 이런 ‘공주의 클리셰’를 깨트린 기념비적인 캐릭터인 피오나 공주는 밤만 되면 괴물로 변하는 저주에 걸려있었는데, 저주를 푸는 유일한 방법인 진실한 사랑의 입맞춤을 해준 슈렉 덕택(?)에 낮에도 밤에도 슈렉과 닮은 꼴인 괴물로 살게 된다. 저주가 풀려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할 것을 기대했던 피오나에게 슈렉은 “제 눈에는 아름다워요”하고 고백한다.

아름다운 영혼을 가진 사람에게 아름다운 외모를 선물할 수 있는 것은 팔자에게도 행운이었다. 이제 그녀는, 그 누구의 눈으로도 더 이상 ‘괴물’일 수 없는 아름다운 세상을 새로 시작한다.

사족 같지만, 필자가 마음에 걸리는 단 한 가지는, 그녀의 남친이 (마치 슈렉처럼,) 그녀의 수술 전 모습을 더 좋아하면 어쩌나 하는 것이다.

기우(杞憂)일 것이다. 수술 전에도 후에도 P의 손을 꼭 잡고 병원에 왔던 훈남이다. 물론 그 친구는 P의 결정을 존중했고, P의 수술을 반대한 적도 없었지만, 이런 이야기 들어보셨는지. 가슴 수술을 그토록 반대했던 여느 집 남편이 수술 후에는 이왕이면 하는 김에 좀 더...(여기까지만 쓰겠습니다).




한상백


현 서울제일 성형외과 원장

서울대 의학박사, 성형외과전문의

서울대 의대 우등 졸업

서울대 의대 대학원 졸업 및 석, 박사학위 취득

서울대병원 수련의, 전공의, 전임의

서울대학교병원 우수전공의 표창(1996년)

전 서울대 의대초빙교수

저서 돌출입수술 교정 바로알기(명문출판사,2006)

대한 성형외과 학회 정회원

대한 성형외과학회지 논문게재 및 학술대회 발표, 강연

2018,2019 한국 및 타이완 성형외과 국제학술대회에서 돌출입수술 초청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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